남산권역 답사
국치의 길을 걷다
• 총독을 보좌하고 행정사무를 통할 감독하는, 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이 거처하던 곳
• 1957년 공보실 주관으로 ‘한국의 집(코리아 하우스)’ 설립
• 옛 정무총감관저 구내에는 일제시기에 조성된 방공호 흔적이 남아 있음
1. 정무총감관저 터 • 총독을 보좌하고 행정사무를 통할 감독하는, 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이 거처하던 곳
• 1957년 공보실 주관으로 ‘한국의 집(코리아 하우스)’ 설립
• 옛 정무총감관저 구내에는 일제시기에 조성된 방공호 흔적이 남아 있음
•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사령부가 있던 곳
• 헌병경찰제도의 총본산인 경무총감부(조선군헌병대사령부)가 자리했던 곳
• 수도방위사령부의 주둔지였다가 1998년 남산골한옥마을로 개관
2. 한국주차군사령부 터 •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사령부가 있던 곳
• 헌병경찰제도의 총본산인 경무총감부(조선군헌병대사령부)가 자리했던 곳
• 수도방위사령부의 주둔지였다가 1998년 남산골한옥마을로 개관
• 원래 일본공사관이었다가 통감관저(1906년)와 총독관저(1910년)로 사용
•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경술국치의 현장, 2010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 주도로 ‘통감관저 터’ 표석 건립
• 2016년 8월 일본군‘위안부’ 기억의 터 기념물 조성
3. 통감관저 터• 원래 일본공사관이었다가 통감관저(1906년)와 총독관저(1910년)로 사용
•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경술국치의 현장, 2010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 주도로 ‘통감관저 터’ 표석 건립
• 2016년 8월 일본군‘위안부’ 기억의 터 기념물 조성
• 일제강점기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가 있던 곳
• 1933년 10월 준공된 청사는 현재 ‘대한적십자사 100주년 기념관’으로 사용
4.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 터• 일제강점기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가 있던 곳
• 1933년 10월 준공된 청사는 현재 ‘대한적십자사 100주년 기념관’으로 사용
• 1895년 이후 일본 사찰인 동본원사(東本願社, 히가시혼간지)가 자리했던 곳. 현재 한양교회와 남산빌딩 등이 들어섬
• 제야의 종으로 사용된 ‘양평 상원사 동종’과 석고단 정문이던 광선문(光宣門)
5. 동본원사 터• 1895년 이후 일본 사찰인 동본원사(東本願社, 히가시혼간지)가 자리했던 곳. 현재 한양교회와 남산빌딩 등이 들어섬
• 제야의 종으로 사용된 ‘양평 상원사 동종’과 석고단 정문이던 광선문(光宣門)
• 1907년 통감부 청사로 사용하기 시작해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로 전환, 식민통치권력의 정점을 이었던 공간
• 1921년 9월 조선총독부 청사 2층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(金益相) 의거 전개
• 1926년 총독부 신청사 건립 이후에는 은사기념과학관으로
6. 통감부·조선총독부 터(김익상 의거터)• 1907년 통감부 청사로 사용하기 시작해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로 전환, 식민통치권력의 정점을 이었던 공간
• 1921년 9월 조선총독부 청사 2층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(金益相) 의거 전개
• 1926년 총독부 신청사 건립 이후에는 은사기념과학관으로
• 1934년 남산왜성대 구 총독부청사 위쪽(현 남산원)에 일본 전쟁영웅 노기 마레스케(乃木希典)를 추념해 노기신사 완공
• 신사 석물 일부가 남았으며, 이곳에 있던 러시아제 대포는 육군사관학교박물관으로 이전
7. 노기신사 터• 1934년 남산왜성대 구 총독부청사 위쪽(현 남산원)에 일본 전쟁영웅 노기 마레스케(乃木希典)를 추념해 노기신사 완공
• 신사 석물 일부가 남았으며, 이곳에 있던 러시아제 대포는 육군사관학교박물관으로 이전
• 1898년 개설된 남산대신궁이 있던 곳으로 1913년 경성신사로 개칭
• 1897년 설치된 왜성대공원과 겹치는 구역으로 갑오전역기념비(甲午戰役記念碑), 황태자전하어주가지처비(皇太子殿下御駐駕之處碑), 이토시비(伊藤詩碑)와 같은 일제 기념시설물이 있었음
8. 경성신사 터(현재 숭의여자대학교)• 1898년 개설된 남산대신궁이 있던 곳으로 1913년 경성신사로 개칭
• 1897년 설치된 왜성대공원과 겹치는 구역으로 갑오전역기념비(甲午戰役記念碑), 황태자전하어주가지처비(皇太子殿下御駐駕之處碑), 이토시비(伊藤詩碑)와 같은 일제 기념시설물이 있었음
• 일제때 대표적인 경제수탈정책의 하나였던 토지조사사업의 완결을 기념하여 일제가 1927년 7월에 세운 조선토지조사기념비가 있던 곳
• 1966년에 철거되었고, 그 자리에 1969년 6월 반공청년운동기념탑
9. 토지조사기념비 터• 일제때 대표적인 경제수탈정책의 하나였던 토지조사사업의 완결을 기념하여 일제가 1927년 7월에 세운 조선토지조사기념비가 있던 곳
• 1966년에 철거되었고, 그 자리에 1969년 6월 반공청년운동기념탑
• 1910년 5월 서울거주 일본인들 주도로 한양공원이 개원될 때 세운 표지석
• 앞면에는 고종태황제의 글씨를 받아 새긴 ‘한양공원(漢陽公園)’이, 뒷면에는 당시 일본인 거류민단장이던 고죠 칸도(古城管堂)가 지은 ‘한양공원기’가 있음
10. 한양공원 표석• 1910년 5월 서울거주 일본인들 주도로 한양공원이 개원될 때 세운 표지석
• 앞면에는 고종태황제의 글씨를 받아 새긴 ‘한양공원(漢陽公園)’이, 뒷면에는 당시 일본인 거류민단장이던 고죠 칸도(古城管堂)가 지은 ‘한양공원기’가 있음
• 1925년 10월 완공. 일제 식민통치의 성지이자 ‘천황’ 숭배를 각인시키는 장소
• 해방 이후 1947년 조선신궁 표석과 도리이 등 시설 일체가 철거. 2009년 한양도성 발굴조사 때 흔적 발견
11. 조선신궁 터• 1925년 10월 완공. 일제 식민통치의 성지이자 ‘천황’ 숭배를 각인시키는 장소
• 해방 이후 1947년 조선신궁 표석과 도리이 등 시설 일체가 철거. 2009년 한양도성 발굴조사 때 흔적 발견
• 1939년 조선신궁 표참도 인접지에 건립한 황국신민서사지주(皇國臣民誓詞之柱)가 있던 곳
• 1947년에 파괴되었으나 2009년 한양도성 발굴조사
12. 황국신민서사지주 터• 1939년 조선신궁 표참도 인접지에 건립한 황국신민서사지주(皇國臣民誓詞之柱)가 있던 곳
• 1947년에 파괴되었으나 2009년 한양도성 발굴조사